1.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고 말씀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깊이 뉘우치는 것)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 말씀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적 참회 곧 사제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고백과 속죄로서 이해할 수는 없다.
3.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만일 그 같은 내적 회개가 육신의 정욕의 여러 가지 억제를 외부로 나오지 않게 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그런 고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한에는(참 내적 참회) 형벌이 계속할 것이다. 즉 우리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5. 교황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힘이나 뜻(意志)을 가지지 못한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기껏해야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들을 그가 사하는 데 불과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만일 그의 사죄하는 기능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될 때 사람 받았다는 죄는 확실히 그대로 잔재(殘在)한 것이다.
7. 하나님께서는 그의 대행자인 사제의 권력에는 전적으로 복종하면서도 그 밖에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는 겸손할 줄 모르는 자의 죄를 결코 사하시지 않으신다.
8. 참회에 관한 교회 법은 산(生存)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며 임종에 처한 사람에게는 어떤 부담이든지 그 법(諸罰에 對한 敎會의 規定)에 의하여 부과되어져서는 안된다.[5]
9. 그러므로 교황을 통하여 역사 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궁의 경우를 예외로 취급하는 교황의 법령에서 우리들에게 자비를 행하신다.
10. 임종에 처한 자에게 대하여 연옥 문제를 내세워서 종교상의 속죄를 보류하는 사제들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짓이다.[6]
11. 종교상의 벌을 연옥의 벌로 변경시키는 ‘가라지’[7] 나온것으로 는 확실히 감독들이 잠자는 동안에 심겨진 것이라고 보인다(마13,25).
12. 종전의 예로서 종교상의 벌은 진실한 회오(悔悟)의 증거로서 사면(赦免)의 뒤(後)가 아니라 전에 부과되었던 것이다.
13. 임종에 처한 자는 죽음으로써 자유롭게 되며 교회 법령의 여러 요구에 대하여 이미 죽은 것이 되고 그 법령의 형벌에서 정당하게 자유 해방된다.
14.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는 사람의 심령의 불완전한 건강과 사랑은 반드시 큰 공포를 초래할 것인데 그 불완전성이 크면 클수록 더 큰 공포가 따를 것이다.
15. 이 불안 공포만으로도(다른 것은 말하지 않는다 치고라도) 연옥의 고통을 구성한다. 그 고통은 절망의 공포에 매우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16. 지옥과 연옥과 천국의 다른 점은 절망의 상태와 절망에 이르는 상태와 구원의 확실성과의 차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17. 연옥에 가 있는 영들은 공포의 감소와 사랑의 증가를 확실히 체험할 것이다.
18. 이상의 영들이 공적의 상태나 사랑의 증가 상태 밖(外)에 있다는 것은 이성으로나 성서적 근거로 증명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19. 구원의 축복의 정확성과 확실성에 관하여서 우리들은 아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고 할 것이로되 연옥에 있는 영들의 대부분을 위하여서는 증명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20. 그런고로 교황이 “모든 죄의 완전한 사면”을 말할 때 그는 단순히 모든 죄의 용서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그 자신에 의해서 부과된 죄의 사면을 의미하는 것이다.
21. 그러므로 교화의 면죄로써 인간은 모든 형벌로부터 해방되며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선전하는 면죄증 설교자들은 모두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22. 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해서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이 형벌은 교회 법에 의하여 현세에서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23. 만일 누구에게든지 모든 형벌의 전적 사면이 허락된다면, 그러한 사면은 확실히 가장 완전한 사람 즉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24.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벌로부터 해방된다는 무제한 되고 어마어마한 약속에 의하여 드러내놓은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25. 교황이 연옥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가진 것과 같은 권위를 모든 감독과 특히 교구 목사는 자기의 감독구나 교구 안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다.
26. 교황은 열쇠(천국)의 힘으로서가 아니고(사실 그와 같은 힘이란 것이 당치도 않지만), 대도(代禱)의 방법으로 영혼들에게 사죄를 허락한다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다.
27. 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8]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28. 돈이 연보궤 안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이득(利得)과 탐욕이 증가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동시에 성직자의 대도(代禱)[9]의 응답 여부는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는 것이다.
29. 마치 성 세베리누스(St. Severin)과 파스칼리스(Paschalis)에 관한 전설에 있는 것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그 곳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어떠한지를 그 누가 알 것인가![10]
30. 누구든지 자기 참회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확신을 못 가지는데 하물며 남의 죄가 완전한 사면을 받았는지를 어떻게 밝힐 수 있을 것인가.
31. 진실로 회개한 사람이 드문 것 같이 면죄증을 진심으로 사는 사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러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32. 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사면을 가르쳐서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되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특별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34. 왜냐하면 이 사면의 은총은 인간에 의하여 정해진 예전적인 사죄 행위의 형벌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35. 연옥으로부터 영혼을 속량한다거나 고백장(즉 참회師-고백을 받는 신부-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허가)을 사는 사람은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자는 비 기독교적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36. 어떠한 그리스도인이고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37.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죽은 자나 산 자나 면죄증이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영적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38. 그러나 교황이 주는 면죄와 그의 관여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미 말한 대로(제6논제 참조) 그것은 하나님의 사면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39. 면죄증에 대한 관대한 생각과 참다운 회개의 필요성을 동시에 사람들에게 권장한다는 것은 박식한 신학자에게 있어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40. 참다운 회개는 형벌을 달게 받는다. 그러나 면죄증에 대하여 관대한 것은 형벌을 등한시하게 하고 슬퍼하게 하며 혹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41. 사도 계승의 면죄(교황의 사면을 의미함)는 사람들이 결코 그것을 사람의 다른 선한 일(선행)보다 더 중요한 것 같이 오해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설교하지 않으면 안된다.
42. 면죄증의 속죄를 자선사업과 비교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교화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스도인에게 가르쳐야 한다.
43.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죄증을 하는 것보다도 선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4.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을 베푸는 일로써 성장하고 그 인간은 선을 행하는 사람보다 선하게 되지만, 면죄증으로써는 인간이 보다 선하게 되지 못하고 다만 형벌로부터 보다 자유롭게 되는 것뿐이다.
45. 가난한 사람을 보고도 본 체 만 체 지나버리고(요3,17 참조) 면죄를 위해서 돈을 바치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자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6. 풍부한 재산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자라면 자기 가족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축할 의무가 있으며(딤전5,8) 결코 면죄증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7. 면죄증을 사는 것은(사고 안 사는 것은) 자유로운 일이요 결코 그렇게 하라고 강요되어진 것이 아니하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8. 교황은 면죄증을 주는 일에 있어서 가져오는 돈보다도 오히려 자기를 위해 경오한 기도를 드리는 것을 필요로 하고 바란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9. 교황의 면죄증은 사람들이 만일 그것에게 신뢰를 두지 않는다면, 유용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잃는 일이 있다면 매우 해로운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만일 교황이 면죄증 설교자들의 행상 행위를 안다면, 자기 양의 가죽과 살과 뼈로써 성 베드로 교회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1. 어떤 면죄증 설교자들에게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게 교황은 필요하다면 성 베드로의 교회당을 팔아서까지라도 그 자신의 재산으로 갚아 주려고(당연하기는 하나)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2. 면죄증서로 구원받을 것을 신뢰하는 것은 헛된 것이다. 비록 판매위탁자가, 아니, 교황 자신이 그 증서에 대해서 자기 영혼을 걸고 보증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53. 면죄증 설교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교회에서 아주 잠잠하여지도록 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이다.
54. 설교하는 데 있어서 면죄증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시간 또는 보다 더 긴 시간을 쓰는 것은 그 말씀에 대하여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 만일 매우 적은 가치만을 지닌 면죄증이 하나의 ‘방울’과 행렬과 의식으로써 축하하게 된다면 가장 큰 가치를 지닌 복음은 백개의 방울과 백의 행렬과 의식으로써 찬양해야 된다는 것이 교황의 의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56. 그것으로써 교황이 면죄를 주는 교회의 장보(藏寶)[11]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충분히 표시되어지지도 않았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57. 그것이 현세적인 보화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많은 설교자(면죄증 판매인)들이 이와 같은 보화를 쉽사리 분여(分與)하지 않고 도리어 쌓아 두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58. 또 그 장보(藏寶)는 그리스도나 성자들의 공로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을 교황의 고움과 전혀 독립적으로 항상 속 사람에게는 은총을 주고 겉 사람에게는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을 주기 때문이다.
59. 성 로렌티어스(St. Laurentius)는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배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 시대 그 당시에 사용된 어의에 따라 말한 것이다.
60.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교회의 열쇠[12] 가 바로 그 장보(藏寶)라고 우리가 말해도 합당할 것이다.
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 관리의 보유사건을 위해서는 교황의 권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명백한 일이기 때문이다.
62. 교회의 참 장보(藏寶)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의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63. 그렇지만 이 장보(藏寶)가 먼저 된 것을 나중 된 것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증오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마19,30 20,16 눅13,30).
64. 그와 반대로 면죄증의 장보(藏寶)가 나중된 것을 먼저 된 것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애호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65. 그러므로 옛날에 있어서 복음의 장보(藏寶)는 돈 많은 사람들을 낚던 그물이었다.
66. 면죄증의 장보(藏寶)는 오늘날도 그것을 가지고 사람의 재산을 낚는 그물이다.
67. 면죄증 설교자들이 ‘가장 큰 은총’이라고 소리 높이 부르짖는 면죄증은 이익을 증가시키는 한에서는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68.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경건에 비하면 그것(면죄증)은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69. 감독들과 교구 교사들은 사도계승의 면죄의 대리자들을 전적인 경의를 가지고 받아들일 의무를 가지고 있다.
70. 그러나 일층 더 큰 의무는 눈을 활짝 뜨고 귀를 바짝 기울여서 교황의 위임한 것 대신에 자기들의 꿈을 설교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71. 사도계승의 면죄의 진리에 반대하여 말하는 자는 추방과 저주를 받을지어다.
72. 그러나 다른 한편 면죄증 설교자들의 해롭고 뻔뻔스런 말에 대항하는 자는 복이 있을 지어다.
73. 어떤 방법으로든지 면죄증 판매를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서 교황이 책망할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74. 면죄증을 구실 삼아 거룩한 사랑과 진리를 방해하려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대해서 교황은 한층 더 심한 분노로 임할 것이다.
75. 교황의 면죄증에도 굉장한 능력이 있어 -불가능한 말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어머니를 능욕한 인간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다[13]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 빠진 생각이다.
76. 그와 반대로 교황의 면죄증이 가장 작은 죄라 할지라도 그 죄책에 관하여서는 없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주장한다.
77. 만일 성 베드로가 교황이었다 할지라도 면죄 이상의 큰 은총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나 교황에 대한 모독이다.
78. 그와 반대로 현 교황이나 또는 다른 어떤 교황이라도 면죄보다 큰 은총 죽 고린도전서 12장에 가르치는 복음과 여러 가지 능력 또는 병 고치는 은사 등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들은 주장한다.
79. 교황은 팔로 장식된 십자가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14]
80. 이와 같은 가르침이 사람들 가운데서 선포되는 것을 묵인하는 감독과 교구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이에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81. 이와 같은 뻔뻔스런 면죄 설교로 비방과 또는 일반 세인의 의심 없는 날카로운 반대로부터 교황에 대한 존경을 수호하기란 제아무리 박식한 사람에게 있어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82. 예로서 만일 교황이 베드로 교회당에 소비될 썩어질 금전으로 인하여 수없이 많은 영혼을 구원한다고 할 것이면(이것도 구실에 불과하지만) 어찌하여 가장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이유 즉 거룩한 사랑과 영혼들의 최고의 필요를 위하여 연옥을 비우지 않는가?
83. 또한 이미 구속받은 사람을 위한 기도는 부당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나 연기제(年忌祭)를 계속하는가?[15] 또 무엇 때문에 교황은 그런 목적으로 교회에 바친 기부금을 돌려주지 않으며 혹은 그것(기부금)의 취소를 허락하지 않는가?
84. 또한 돈 때문에 불 경건한 자와 하나님의 원수들로 하여금 그의 사랑을 받는 경건한 영혼을 구하도록 허락하면서, 그 경건한 영혼 자신의 필요를 위하여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구해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황의 어떤 새로운 신성함인가?
85. 또한 참회에 관한 교회의 법규는 사실상 오랫동안 사용치 않았기 때문에 폐지되고 사문화되었는데[16] 왜 아직 돈으로 인한 면죄증 부여를 통하여 구속해 내는 것 같이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86. 또한 오늘날 제일 부자의 재산[17]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신자의 돈으로 행하는 대신 차라리 자기의 돈으로 성베드로 교회당쯤은 세울 수 있지 않는가?
87. 또한 완전한 참회로 충분한 사면과 속죄에 대한 편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엇을 사하려 하고 무슨 영적 은혜에 참여를 주려는가?
88. 또한 교황이 각 신자에게 사면과 은총의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번 주는 것을 만일 하루에 백번 준다고 한다면 교회는 얼마나 더 큰 축복을 얻게 되겠는가? (면죄증에는 그것으로써 한 번만 사죄된다는 것이 표시되어 있다)
89. 만일 교황이 면죄증으로써 돈보다도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였다고 본다면, 무엇 때문에 그는 오래 전부터 주어 오던 증거나 면죄증을 정지하는가? 똑 같은 효력을 가졌음에 틀림없지 않는가?
90. 일반 세인이 열거한 반론에 대하여 떳떳한 이유를 들어 해결하지 않고 다만 권력으로만 억압하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원수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드는 일이요 또 그리스도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91. 그러므로 만일 면죄증이 교황의 정신과 의도에 따라 선전된다면, 이 모든 문제(Bedenken)는 쉽사리 해결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평안도 없는데 “평안, 평안”하고 부르짖는 예언자들은 다 물러가라. (겔13,10 16 렘6,14 8,11 살전5,3)
93. 그러나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십자가, 십자가”하고 부르짖는 모든 예언자들은 축복을 받을지어다. (사실) 십자가는 없는 것이다.
94. 그리스도인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하여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훈계 받아야 한다.
95.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위안에 의해서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행14,22).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1. 만유의 주님이시며 영원한 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고 선포하신 그 골자는 성도들의 생애가 참회의 요소가 있어야 함을 의미하노라
2. 이 증인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적 참회(Sakra- mentlishen) 곧 제사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속죄의 고백이 있어야 함을 선언하노라
3. 오늘의 선언은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법이다. 만약 육신의 내적인 회개가 정욕까지도 정복하지 못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그런 이유로 성도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참회의 가치는 무용이며 징계 또한 계속될 것이며 성도의 생명이 끝날때까지 괴로움은 계속될 것이다.
5. 교황은 그 직권으로 교회의 권위를 이용해서 징계나 그 어떤 벌도 용서할 권세를 갖지 못한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그 어떤 죄라도 사할 힘이 없다. 그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에도 부족을 느껴야 하며 오히려 업신여김(Verachten)을 당하게 될 때 그 죄 자체도 그대로 잔재하여 있는 것이다.
7. 하나님은 그의 대행자인 제사의 권력에는 전적으로 복종하면서도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는 겸손할 줄 모르는 자의 죄를 결코 사하시지 않으신다.
8. 교회 법은 징계를 전제로 할 때 그것은 산자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며 임종에 처한 사람에게는 어떤 부담이나 교회의 규정에 적용해서는 안된다.
9. 그러므로 교황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고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황은 오히려 자비를 베풀면 되는 것이다.
10. 죽음을 맞이하는 자에게 연옥문제를 내세워서 종교상의 속죄를 응용하는 제사들의 행위는 아주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위인 것이다.
11. 성경적인 죄의 적용을 연옥의 죄로 변질시키는 가라지 같은 행위는 감독들의 잘못임을 지적하고 싶다.
12. 전례의 법대로 한다면 종교상의 벌은 회오의 증거로서 사면의 뒤가 아니라 전에 부과되었던 사실임을 알아야 한다.
13. 임종에 처한 자는 죽음으로써 자유롭게 되며 교회 법령의 여러 요구에 대하여 이미 죽은 것이 되고 그 법령의 형벌에서 정당하게 자유 해방된다.
14. 회개치 않은 죄인이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의 심령상태는 오직 공포를 초래할 것이며 그 불완전이 크면 클수록 공포도 또한 클 것이다.
15. 여기에 불안과 공포는 연옥의 고통을 뜻하며 그것은 곧 절망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6. 천국과 연옥과 지옥의 차이점은 구원의 확실성과 절망에 이르는 상태와 절망의 상태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17. 연옥이란 공포의 장소이며 그곳은 공포의 감소로도 해석할 수 있다.
18. 이상의 지적들이 성경적 근거로서나 이성의 증거로서도 증명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19. 구원의 예정성에 대하여는 확실한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으나 연옥의 영들에 대하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
20. 교황이 모든 죄의 문제에 있어서 완전사면을 공포할 때 그는 죄를 사면할 자격을 갖지 못한다. 다만 그 자신에게 지은 문제에 대해서만 용서적 사면을 의미해야 한다.
21.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교황은 인간의 모든 죄의 문제를 사면해 줌으로써 형벌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잘못된 행위이다.
22. 교황은 지옥에 있는 영혼에 대하여 그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죄 문제로 인한 형벌은 오직 성경적 방법으로서 현세에서 사함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23. 모든 죄의 문제로 사면이 가능하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며 그 수는 극히 제한된 숫자일 것이다.
24.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벌로부터 해방된다는 무제한하고 어마어마한 약속에 의하여 버젓이 사기당하고 있는 것이다.
25. 교황의 내세관의 잘못으로 인해 감독 교구 목사들까지도 그 영향력으로 잘못 되어가고 있다.
26. 천국의 열쇠를 핑계삼는 일은 아주 잘못 되었으나 영혼들에게 사죄를 가르치는 일은 잘한 점이다.
27. 연보 궤안에 넣은 돈의 소리가 때그랑 날 때마다 지옥에 간 영혼이 해방된다는 말은 인간의 학설에 지나지 않는다.
28. 성도들이 헌금한 돈이 연보궤 안에서 땡그랑 소리를 낼 때 그 행위는 탐욕에 가득찬 행위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성직자의 대속의 기도도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선한 뜻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29. 마치 성 세베린과 파스칼리스에 관한 전설의 기록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그곳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어떠한지를 누가 알것이가!
30. 누구든지 자기 참회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그가 지은 죄에 대해서 완전히 사면을 받았는지를 위의 행위들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31. 진실로 회개한 사람이 귀한 것 같이 면죄증을 사는 사람도 사실은 거짓의 행위로 그리한 것이다.
32. 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친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사면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은총이라고 설득한 사람을 모든 이들은 특별히 징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34. 그 이유는 사면의 은총은 인간에 의하여 정해진 예전적인 사죄행위의 형벌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35. 연옥에 가 있는 자들의 영혼을 신부의 중견적 역할을 통해서 드려진 사면장의 이유로 그들은 참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비성서적 교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36. 진심으로 회개한 모든 크리스천들은 면죄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37. 중생한 성도는 죽은 자나 산 자나 면죄증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회의 모든 영적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38. 하나님의 사면 선언이 교황에게 부여됐다면 교황이 주는 사면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39. 면죄증에 대한 관대한 생각과 참다운 회개의 필요성을 동시에 사람들에게 권장한다는 것은 유능한 신학자에게 있어서도 매우 어려운 것이리라.
40. 참다운 회개는 징계를 달게 받는다. 그러나 면죄증에 대한 놀라운 사실은 징계를 등한시하고 슬픔을 가지려하는 행위까지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41. 사도계승과 교황 사면증을 받게 하는 행위를 선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알도록 설교해서는 안된다.
42. 교황의 지도가 면죄증을 미끼로 해서 그것을 자선 사업인양 교훈한 것은 교황의 잘못된 의도임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3. 불쌍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는 면죄증을 사는 것보다 더 선한 일이라는 것을 모든 크리스천에게 교훈해야 한다.
44. 면죄증으로 인간은 선하게 되지 못하며 사랑의 선한 행위로만이 형벌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45. 오직 면죄증을 위하여서는 교황에게 돈을 바치고 가난한 자에게 관심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6. 딤전 5장 8절의 교훈 같이 경제생활이 어려운 가족을 위하여서는 필요한 것을 저축할 수 있어도 결코 면죄증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7. 면죄증에 대한 판매 행위는 그 어떤 개인에게는 자유로운 행위일지 모르나 그것을 성도들에게 강요해서는 결단코 안된다.
48. 경건의 신앙생활은 교황에게 면죄증을 사는 일보다 그 개인을 위해 훨씬 좋은 행위인 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9. 교황의 면죄증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옳은 행위이다. 그러나 면죄증 문제로 하나님께 두려움을 갖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임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들으라. 교황은 당신의 면죄증을 위해 설교자들의 행상행위를 묵인한다면 그것은 양의 가죽의 살과 뼈로써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진다는 사실은 차라리 그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이 나을거라고 크리스천들에게 교훈함이 좋지 않겠는가?
51. 교황 사제자들의 잘못 때문에 많은 돈을 빼앗긴 자들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을 팔아서까지 갚아주어야 하리라.
52. 교황 자신도 면죄증서로 영혼을 구원받지 못할 것이며 그 행위 자체도 헛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53. 모든 교회에서 면죄증 문제가 묵인된다면 그렇게 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적이 되는 것이리라.
54. 말씀을 증거하는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면죄증 문제를 더 깊게 다루는 행위는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 교황의 의중이 그 어떤 의식이나 행위 따위가 복음보다 앞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찬양한다면 그것은 바른 의사임에 틀림없다.
56. 교황의 면죄 사건은 아직까지 교회나 그리스도인에게 표시되어 지지도 않았고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57. 위의 행위들은 현세적 보화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할진대 오히려 면죄증 판매인들은 이것을 쌓아 두고자만 하고 있다.
58. 위의 잘못된 행위들은 항상 속사람과 겉사람에게 은총과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에 관한 교훈을 혼돈시키고 있을 것이다.
59. 성 로렌티어스는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배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 시대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어의에 따라 말한 것이다(St. Laurentius는 258년 순교했다).
60.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주어진 교회의 열쇠는 장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관리의 유보사건을 위하여는 교황의 능력에 적용된다고 봄이 좋다.
62. 교회의 참 뜻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과 복음이 되는 것이다.
63.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이런 일들 때 증오의 사건이 있음을 지적한다.
64. 이와 반대로 면죄증의 사건은 항상 나중된 것을 먼저로 하기 때문에 모순이다.
65. 돈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옛날부터 전해오는 복음의 가치는 사람들이 낚던 그물에 비유된다.
66. 그러므로 면죄증 사건 역시 오늘날에 와서도 재물 많은 사람들을 낚는 그물에 비유된다.
67. 사실인 것처럼 가장 시키는 면죄증 설교자들은 이것이 가장 큰 은총이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는 것이다.
68. 하나님의 십자가의 은총은 면죄증이 아무것도 아님을 교훈시키고 있다.
69. 감독들 교구 목사들은 사도 계승의 면죄의 대리자가 아님을 적의를 갖고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
70. 성직자들의 의무는 교황이나 자기들의 꿈을 설교해서는 안된다.
71. 사도 계승의 면죄의 진리에 반대하여 말하는 자는 추방과 저주를 분별해야 한다.
72. 다른 한편 면죄증 설교자들의 잘못되고 뻔뻔스런 말에 대항하는 자는 복을 받을지어다.
73. 교황은 어떤 방법이든지 면죄증 판매를 방해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분노로써 책망할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74. 그것을 구실삼아 거룩한 사랑과 진리를 방해하려고 기도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교황은 심한 의분을 나타내어야 하리라.
75. 하나님을 능욕한 죄까지도 면죄증으로 사할 수 있다는 교황의 발언은 정신나간 발언들이다.
76. 우리들의 주장은 교황의 면죄증은 아무리 작은 죄라도 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77. 베드로가 교황이라고 할지라도 면죄증과 같은 그 이상의 은총은 줄 수 없다.
78. 현 교황이나 또는 다른 어떤 교황도 사실 면죄보다 더 큰 은총(고전 12장) 즉 가르치는 은사와 능력 혹은 병 고치는 은사는 가지고 있다고 본다.
79. 교황의 팔로써 사용되는 십자가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십자가를 모독한 행위다.
80. 위의 가르침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묵인된다면 이것은 감독과 교구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81. 잘못된 면죄증 설교나 비방은 교황의 존경에 대한 것으로 응용되지만 그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쉬운 일은 아니다.
82. 베드로 성당을 지식 위하여 보잘 것 없는 돈의 가치를 높이는 교황의 행위가 위대하면 왜 연옥을 비우지 못하는가?
83. 구속 받은 사람을 위한 기도는 부당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나 연기제를 계속 하는가? 또 무엇 때문에 교황은 그런 목적으로 교회에 바친 기부금 취소를 명령하지 않는가?
84. 경건치 못하면서도 하나님께 잘못을 범하고 있는 자를 돈으로 인하여 경건에 이르도록 하는 행위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경건한 영혼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구속될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교황 자신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85. 회개의 가르침은 교회에서 오래 전에 사라졌고 이제는 면죄증 덕분으로 구속된다는 사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86. 제일 돈 많은 자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자들이 내는 돈으로 하지 않고 자기의 돈으로 성 베드로 교회당 쯤은 세울 수 있지 않는가?
87. 속죄함 받은 자들에게 무엇을 구하려고 또한 무슨 영적 은혜의 참여를 추구할려고 하는가?
88. 교황이 신자들에게 사면과 은총의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번씩 행하는 것을 하루에 백번 실행 한다고 한다면 교회는 더 큰 복을 받겠는가?
89. 면죄증의 효과가 돈보다도 먼저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였다고 한다면 왜 중지했는가? 그와 같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말이다.
90. 교황은 수많은 세인들의 예리한 반기에 대해서 떳떳하게 이유를 들어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일들 때문에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신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는가?
91. 면죄증이 교황의 바른 정신에 따라 의도 되었다면 오늘의 이러한 어려움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택함받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불안도 없는 상태에서 평안만을 부르짖는 예언자들의 외침은 모순이요 잘못이니 떠날지어다.
93.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십자가를 강조하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겔 13:10, 렘 6:14,8:11, 살전 5:3).
94. 모든 신자들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또 지옥 같은 고통을 통해서라도 오직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해야 한다.
95. 이와 같이 하여 크리스천으로 하여금 보다 많은 값진 고난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데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게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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