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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신앙생활/신학자료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초판 서평/요약

by jinaou83 2020. 8. 25.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필찬 지음, 서울 : 성서유니온선교회, 2013

 

1. 서론 :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설교하고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수많은 이단들의 먹잇감으로 사용되었던 요한계시록은 그 만큼 해석하기가 어렵고 까다로우며 위험하다. 묵시책이기 때문에 여러 상징과 비유들이 많아 접근하기 힘든 책이다.

우선 요한계시록은 정서적인 면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책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요한계시록에서는 보복과 심판을 강하게 선포하시며, 무서운 재앙들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참으로 실망스러운 뿐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설교와 가르침은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까지 들게 한다. 그동안 요한계시록에 대한 오해로 인해 한국교회는 오랜 열병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요한계시록을 피해 다닐 수 있을까! 올바른 가르침과 설교를 통해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바른 세계관과 종말관을 심어주고 한국교회의 회복을 이루어야 할 때이다. 이런 갈급함으로 본서를 집어 들었다.

 

2. 새롭게 발견한 통찰 :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종말론적 교회의 모습

 

(1)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교회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적 전통의 영향을 받은 대로 묵시문학의 특징인 공간적, 시간적 초월로서 교회를 그리고 있다. 공간적 초월로서의 하늘과 시간적 초월로서의 종말을 근간으로 하여 교회를 설명한다. 그것은 교회가 현재 전투하는 교회로서 이 땅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승리한 교회로서 하늘에 존재하며 그 하늘에서 교회는 종말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땅에 존재하는 144,000으로 상징되는 교회와 ‘셀 수 없는 무리’로 상징되는 하늘에 있는 교회는 분명 하나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요한은 이 하나의 교회를 두 개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땅에 존재하여 전투하는 모습과 하늘에 존재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있다. 이렇게 교회는 전투하는 모습과 승리한 모습의 양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또한 땅과 하늘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하늘에서 종말적 축복을 미리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현재 교회는 하늘에서 예수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도래할, 종말 이후에 주어질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이라는 곳이 영원한 세대와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종말에는 하늘과 땅의 구별이 사라지게 되므로 하늘에 거하는 자들과 땅에 거하는 자들의 구별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점점 힘을 잃어가며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오늘날 한국 교회에 요한계시록은 오히려 희망적이다. 모두가 회복불능의 실패를 말하지만 한국교회는 아직 희망이 있으며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결코 실패하도록 보고 계시지만은 않으시기 때문이다. 비록 사회는 교회를 향해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세속주의에서 벗어나고, 사회윤리와 도덕을 잘 준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2) 공동체성 강조

 

한국교회는 공동체성에 눈을 떠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향한 계시이다. 교회를 향해 말씀하고 계신다. 일곱교회를 향한 권면과 책망과 칭찬도 그렇고, 수많은 무리들에 대한 언급도 결국 교회를 향한 계시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공동체 의식이 많이 사라지고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의 경향이 많이 나타나는데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런 현상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한계시록을 오해하고 잘못 오용하는 집단들은 대체로 기성교회를 비난하고, 다툼과 분리를 사모하며, 공동체성을 흐리게 만든다. 한국교회는 이런 공동체성을 잃어버린 현상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본서는 하늘에서나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경험하는 천국공동체의 개념을 강조하는 듯하다.

 

3. 나의 목회에 적용할 점

 

본서는 그동안 요한계시록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한마디로 요한계시록이 이런 책인 줄 몰랐다. 요한계시록은 어렵고 두려운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복음서이다. 역시나 문제는 해석에 달려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도록 눈과 마음을 흐리는 것이다.

본서는 요한계시록의 전체 구조와 흐름을 보여주며 이해를 돕고 있다. 왜 사도요한에게 무시무시한 심판의 환상을 보여주셨는지, 왜 일곱 교회를 향해 책망과 칭찬을 하셨는지, 왜 요한계시록에 지옥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는지, 왜 고난 중에도 끝까지 남은 성도를 언급하시는지, 왜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말씀하시는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본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나님의 우주적인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이다.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정의로 이 땅을 심판하신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향해 무정하고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합리해 보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신다. 끊임없이 계속 되는 악의 존재와 믿음으로 싸워 이기는 믿음의 성도를 기대하신다. 두려울 것이 무엇이랴?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최후 승리를 약속하신 사랑의 하나님이 날마다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렇기에 요한계시록은 사랑의 하나님이 주신 복음서이다.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관점으로 요한계시록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겠다. 무엇보다 이 시대를 향해 공동체의 중요성, 특별히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하나님이 관용이 없으시고 잔인하신 분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심을 설교해야겠다. 우리가 때때로 하나님의 사랑과 관용을 오해할 때가 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용서될 것이라 생각한다. 관용과 포용의 문화가 극대화되면 아무것도 절대로 옳은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절대로 그른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을 낳게 된다. 따라서 모든 종교가 허용되며, 모든 도덕개념이 사라진다. 폭력과 살인과 그 어떤 악도 심판받지 않는다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든다. 그러나 기독교는 유일신만을 숭배하기에 가장 비관용적인 사람으로 비춰지겠지만, 절대적인 법과 그에 따른 심판을 믿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선을 따르기 위해 날마다 고군분투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여러 심판과 재앙들이 과연 부당한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관용과 포용의 껍데기가 아닌 하나님이 그어주신 자유의 틀 안에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원하신다. 그 자유의 틀을 넘어가면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을 읽기에 앞서 왜 요한계시록이 심판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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