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아이”를 읽고
- 돈 리처드슨 지음/ 김지찬 옮김/ 생명의 말씀사(2013) -
1. 선교에 대한 새로운 통찰
타문화권에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이유는 선교사와 타문화 현지인 사이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 먼저 선교사는 선교지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잘 이해하고, 성경적 진리에 근거한 신학적 기초를 가지고 성경적인 메시지를 전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문화우월성을 버려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문화우월성을 가지고 타문화권에 접근한다. 그들의 문화를 처음부터 열등하다고 판단하고, 한국식, 미국식 선교방식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고, 그들의 문화를 수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질적이고 비문화적이라는 판단에서 출발하는 이런 선교방식은 오히려 복음 전달에 장애가 되고 선교의 실패를 낳게 된다. 문화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가지고,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상황화(contextualization)라는 말이 있다. ‘문맥 또는 전후관계를 의미하는’ 상황(context)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이에 대한 사전의 정의는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분명하게 해주는 관련된 이야기’ 또는 ‘관련된 상황으로 어떤 것이 존재하거나 환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화에 대해 보편적으로 알려진 개념은 ‘문화를 거슬러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선교의 의미가 혼동되고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났다.
상황화라는 개념은 ‘구속의 유비’라는 개념과 연결하여 생각해야 한다. 본서의 저자 돈은 이리안자야의 사위부족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 그들에게 ‘배반’이 최고의 가치이며 덕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배반이라는 것이 사위부족을 하나로 엮어 주는 줄이었고, 수많은 세월을 통해 그들이 조직화하고 완성시킨 세계관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배반이 살해할 목적으로 희생자를 우정으로 살찌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상대방에 대한 우정의 연극이 극에 달했을 때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하듯, 교묘한 배반을 통해 적의 머리를 취하는 것이 모든 사위족 남자들의 꿈이었다. 이들에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의미를 설명하고 복음을 전할 것인가? 기회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저자 돈은 아주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사위부족이 이웃한 부족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화해의 아이’를 교환하는 것이었다. 돈은 이 화해의 아이의 개념을 이용하여 복음의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위족의 남녀노소가 복음을 받아들였음은 물론 이들의 문화와 세계관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각 족속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 안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실마리를 남겨 두셨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구속의 유비’이다. 다시 말하면 선교사의 역할은 대상 부족의 문화와 세계관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하나님께서 복음을 해당 부족들에게 설명하고 복음화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신 구속의 모형을 찾아내어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화의 개념을 단지 복음 선포와 문화에 감추어진 구속의 모형을 찾는 정도로 축소시켜서는 안된다. 각 부족이 나름대로 독특한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삶의 패러다임 전체를 이해하지 않으면 상황화 자체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생존전략 전체에 대한 이해와 이에 따른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분야에 숨겨진 구속의 유비만을 발견하여 영적인 분야에서만 복음화를 시도한다면 이들은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끼고 자신들의 이전 풍습이나 문화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생존전략에 대한 완전한 변화 없이 일부만 변화되고 이전의 삶에 대한 기능적인 대체물이 제시되지 못하면 그들은 기독교 용어와 의식의 형태를 빌어 자신들의 정령숭배와 사교의식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듯 타문화권 선교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선교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소통은 중요시되고 있다. 특별히 타문화권 선교는 더욱더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전 풍습과 문화, 그들의 세계관과 사고의식 등등 그들의 모든 분야에서 삶의 패러다임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성령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셔서 우선 타문화권 현지인들을 상대할만한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하며, 그들의 삶의 패러다임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겠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본서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결국 ‘사랑’의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살아온 환경이 다를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가치관과 살아가는 방식, 세계관까지 전부 다른 타문화권 현지인들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손을 내밀고, 먼저 다가갈 것인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그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어떻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본서의 저자에게 주신 사랑의 마음이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나는 돌발 상황들 속에서도 끝까지 그들을 향한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복음의 씨앗을 뿌릴 틈을 보고 그들에게 그들의 눈높이로 복음을 전한 저자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애썼던 저자의 수고와 노력이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타문화 선교 대상은 좁은 영역으로 바라보면 바로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을 뜻할 수도 있다. 나와 삶의 가치관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며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나는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가! 내가 화해의 아이, 화해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회복한 것처럼 나 역시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화평을 위해, 그들과 하나님과의 화평을 위해, 좀 더 선교적인 생각과 마음을 가져야겠다.
2. 질문
(1) 본서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해당 부족들에게 설명하고 복음화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신 구속의 모형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어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 이렇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을까? 만일 ‘화해의 아이’와 같은 구속의 유비를 발견하지 못했을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타문화권 속에서 구속의 모형을 찾아 복음을 증거할 때,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기준과 제한은 없는 지 궁금하다. 무조건적으로 상황화하게 된다면 기독교 용어와 의식의 형태를 빌어 자신들의 정령숭배와 사교의식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혹은 ‘화해의 아이’ 자체가 하나님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절하며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이런 부작용들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후 나타나는 반응과 결과가 어떠해야 복음 선포가 잘 되었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복음 선포에 대한 반응과 결과 역시 선교사의 기준에서 판단되는 것은 아닌가! 복음 선포에 대한 반응과 결과에 대해서도 타문화권이라는 특수한 환경이기에 고려하고 유의해야 할 점은 없는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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