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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신앙생활/신학자료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기독교조직신학개론(다니엘L. 밀리오리) 요약 - 제2장 계시의 의미

by jinaou83 2020. 8. 13.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기독교 조직신학개론
다니엘L. 밀리오리 지음 | 신옥수, 백충현 옮김
(새물결플러스)

 

2 계시의 의미

계시란 무엇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가득 있다. 계시는 깜짝 놀랄만한 선물로서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동요시키는 명령으로서 인간의 속으로 꿰뚫고 들어온다. 계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목적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계시를 받아들이는 자의 삶은 철저한 변화를 겪는다. 윌리엄 에이브러햄은 계시를문지방으로 묘사했는데, 계시는 마치 집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것과 같다. 문지방을 넘어서면 다른 세계 속으로들어가게 된다.

 

감추어진 하나님과 계시된 하나님

기독교 신앙과 삶은 하나님의 성품과 목적에 대한 신뢰할 만한 지식과 불가분리적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있는가? 하나님이 전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알려질 없다면 어떻게 올바르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며 섬길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그분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없고, 모든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그분을 통제할 있거나 우리의 소유물로 변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유로우시며 영원한 신비이며 감추어져 있는분이다. 하나님은 계시된 분인 동시에 감추어진 분이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말씀하고 행하시는데, 이를 통해 그분은 우리에게 알려진다. 하지만 동시에 구약은 하나님이 계시 사건 속에서 역설적으로 감추어져 있음을 증언한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시지만 그렇다고 충분히 완전하게 이해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신비이기를 멈추지 않으시며, 인간의 생각과 언어보다 이기를 중단하지 않으신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구현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십자가 죽음과 부활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를 계시하신다. 그렇지만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계시는 역설적으로 감추어진 계시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는 온전히 신뢰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그리고 창조, 화해, 구속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우리가 아무리 많이 성장한다 하더라고 하나님은 항상 그보다 크신 분이다라고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어떤 피조물의 이성도 하나님을 온전히 파악할 없다 했다. 루터는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감추셨다 했다. 바르트는십자가 바로 여기처럼 하나님의 감추어짐이 강력하게 일어난 곳이 다른 어느 곳에 있겠으며, 바로 여기처럼 하나님이 모욕을 당하신 곳이 달리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했다.

 

객관적 계시와 주관적 계시

계시의 사건은 객관적 사건인가? 아니면 주관적 사건인가? 폴틸리히는계시는 주관적 사건과 객관적 사건이 항상 엄밀하게 상호 의존의 관계를 맺고 있다 했다. 계시란 특정 사건들을 통하여 일어나는 하나님의 자유롭고 은혜로운 자기 드러냄이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특정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말하시며 행동하심을 가리키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활동을 보게 하고 전유하게 하며 증언하게 하는 성령의 내적인 활동을 모두 가리킨다. 하나님이 계시 사건의 으뜸가는 배우이지만 인간 또한 참여자로서 역할을 한다. 그런데 계시의 과정 중에 인간의 이성과 상상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지가 최근 중요한 논점이 되었다. 계시를 인간의 이성이나 상상에 대한 초자연적 대체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계시의 개념을 왜곡하는 것이다. 계시는 인간의 능력을 파괴하거나 무력화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마음의 헌신을 이끌어내고 인간의 상상력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인간의 이성에 새로운 방향을 제공한다.

기독교 신학에서 사용하는 계시의 의미에 대해 요약하면

첫째,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자기-드러냄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쥐고 우리로부터가 아니라 우리에게로 주어진 선물로서 경험되어지는 것이다.

둘째, 계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정체성과 의지를 소통하기 위해 선택한 특정한 사건들과 특정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셋째, 하나님의 계시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감추심이다. 철저한 타자성, 감추어짐과 예측 불가능성은 하나님의 계시의 주요한 특성이다.

넷째,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의 인격적 반응과 전유를 요구한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인 지식이다. 계시의 목적은 비밀교리를 소유하는 있지 않고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사는 있다.

다섯째, 하나님의 계시는 항상 불안하게 만드는, 심지어 충격적인 사건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가 가졌던 이전의 이해를 파괴한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의 저항과 거부에 직면하다.

여섯째, 계시는 하나님과 세상과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새로운 해석학적 초점이다.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인간 행동의 변화와 창의적 상상을 끌어낼 있는 무한한 근원이 된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매개되는 방식을 가지,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로 구별한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다양한 방식으로 관련시킨다. 특별 계시는 결국 보편적으로 가능한 지식을 상징적으로 특수하게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는 반면,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계시만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며 다른 모든 주장들은 완전히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다. 가운데는 특별 계시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충분한 지식도 필요하고, 일반 계시를 통해 도덕과 종교를 위한 광범위한 토대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절충주의자 신학자들도 있다.

칼뱅은 하나님에 관한 자연적 지식이 존재함을 주장하면서, 보편적으로 인간이 가지는신성에 대한 감각’, 보편적으로 심겨져 있는종교의 씨앗 기꺼이 인정한다. 인간의 정신은 자연적 본능을 통해 신성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죄로 인해서 이런 신성에 대한 감각이 심각하게 약화되어 성경의 특별 계시와 비교하면 불충분하고 혼돈스러우며 모호하고 희미하다고 주장한다. 어느 누구도 책임을 면제받을 없을 만큼 보편적 계시가 존재하지만 죄인 인간의 습관은 보편 지식을 우상으로 바꾸어버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모호하고 피상적인 종교성은 무관심이나 절망을 초래하며, 그렇지 않을 때에도 끊임없이 우상숭배적 조작의 위험에 처할 있다는 점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몇몇 신학자들은 특별 계시에 몰두하면 필연적으로 오만하고 협소한 태도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로 편협주의와 배타주의는 기독교의 고유한 정체성에 과도하게 충실한 결과라기 보다, 오히려 그것을 잃어버릴 생겨나는 현상이다.

계시에는 온갖 종류의 우상숭배에 대한 비판이 따른다. 특별 계시를 일반 계시의 단순한 부정으로 간주해서도 안되고 특별 계시를 신성에 대한 일반 개념의 단조로운 연속과 완성으로 여겨서도 안된다.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구별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하지만 쉽게 오용될 있다. 특별 계시를 약화시키거나 특별 계시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일반 계시에 근거한 하나님의 지식은 특별 계시와 함께 변화한다. 예수의 사역과 십자가에서 놀랍게 드러난 자기 계시는 우리의 개인적 관계와 이웃 상호 간의 관계를, 자연에 대한 태도를, 문화적 활동을,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상상하고 그분과 관련을 맺는 우리의 방식을 변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계시의 모형들

에이버리 덜레스는 계시의 모형을 다섯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계시는 권위있는 교리의 형태를 취한다. 권위 있는 교리 또는 계시된 명제로서의 계시 모형은 인지적 내용을 방어하고자 하는 고상한 목표를 지향하지만, 계시의 의미를 과도하게 합리주의적으로 이해하려는 약점을 지닌다.

둘째, 계시를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과 동일시한다. 모형은 성경의 본문 혹은 교회의 가르침과 동일시되며, 성경이 이야기 하는 중대한 사건들 속에 계시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행동과 이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해석을 분리한다는 약점이 있다.

셋째, 계시는 특별한 내적 경험으로 간주된다. 모형은 성경도 아니고 교회 교리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도 아니며 계시는 오직 영적 각성과 갱신을 일으키는 현재의 개인적 경험이다. 이것은 협소하고 개인주의적인 경험관으로 기울어져 공동체와 성경의 텍스트와 실천이 중요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넷째, 변증법적 현존이라고 명명한다. 모형은 성경과 교회 선포가 매개하는 하나님 말씀과의 대상화할 없는 만남을 강조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과 자유를 강조하지만 동시에 매개체의 유한성과 한계성을 나타낸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연결점이 되는 성육신의 실재를 간과하고 있다는 약점이 있다.

다섯째, 계시란 변혁적 행동을 초래하는 새로운 인식이라고 이해한다. 인간 의식의 비약적 발전으로 간주되며 이것은 창조적 상상과 윤리적 행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계시를 받아들이는 자를 적극적인 역할로 강조하지만 성경의 증언과 전통을 경시하고 심지어 그것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약점을 가진다.

 

덜레스는 다섯 가지 유형 모두 불만족스럽다고 판단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독자들에게 단순한 과거 사건이나 현재의 경험으로 제한될 없으며, 재림 때에 나타날 그리스도의 최종적인 모습을 가리킨다고 상기시킨다. 계시는 끝나지 않았으며, 계시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사건의 완성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성경의 이야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드러냄으로서의 계시

 

기독교 신앙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을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로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련성 안에서 만물을 이해하는 기초로서 이해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계시만이 인격체인 우리들에게 충분히 이해될 있으며, 오직 인격적 계시만이 최고로 인격적이신 하나님의 실재를 드러낼 있다. 따라서 인격 상호 간의 소통을 통한 지식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고 이해할 있다. 물론 이것은 단지 유비일 뿐이다.

 

인격 상호간의 지식과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드러냄 사이의 유비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전개될 있다.

첫째, 인격 상호 간의 지식은 지속적으로 드러난 행동 유형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한다. 그가 누구인지, 성품이 어떤지는 행동에서 드러난다. 물론 여기에 모든 정체성과 의도와 성향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우리는 일관된 행동 유형에 비추어 그가 누구인지 판단할 있다. 따라서 예수의 일관된 행동 유형, 하나님에게 헌신하고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며 사랑하는 행동 유형은 하나님의 자기-드러냄이라고 이해할 있다.

둘째, 인격체의 참된 정체성은 자유롭게 드러난다. 인격체는 새롭고 놀라운 일들을 자유롭게 행할 있다. 하나님은 한결같이 신실하시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언제나 놀랍고 새로운 방식으로 성취되며 예기치 못한 일을 행하신다.

셋째, 인격 상호 간의 지식은 약속을 신뢰하고 약속에 반응하며 살도록 지속적으로 초청한다. 인격적 지식 안에는 새롭고 놀라우며 예기치 못한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약속하는 행위는 모든 인격적 관계에서 중대한 차원이다. 성경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의 특징은 신실함에 대한 약속과 요구였다.

넷째, 인격체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은 종종 이야기의 형식으로 드러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시된 정체성은 주로 이야기 형식으로 드러난다. 이야기는 인격의 성품과 목적을 규정하는 일관적인 유형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성경 이야기가 가지는 한계점도 있다. 첫째,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정체성을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성경의 아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의 중심에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분을 통해 하나님의 정체성과 목적과 권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둘째,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자기-드러냄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의 이야기는 우리를 참여시키고 자유롭게 하며 회심시키고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자기-드러냄을 알려주는 성경 이야기는 종결되지 않은 이야기라는 점이다. 예수의 이야기는 종결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야기를 완성하실 있다.

성경의 이야기 형태 이외의 다른 문학 장르들 또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차원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성경은 이야기 외에도 예언자적 신탁, 잠언, 명령, 찬양, 부르짖음, 애가, 묵시적 환상 다양한 형태들을 포함하며 각각은 자유롭고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그분의 자기 계시를 증언하는 중요한 방법이 된다. 그러므로 계시를 이루는 다양한 성경적 증언의 형태들을 어느 것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계시, 성경, 교회

 

계시는 창조, 구속, 종말에서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중심적으로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활동 전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성경의 증언과 성령의 활동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 결코 아무것도 이해할 없을 것이다. 성령은 성경의 메시지를 조명하고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열리게 함으로써, 우리를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 인도한다.

바르트는 하나님 말씀의 삼중적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칼 바르트의 "하나님 말씀의 삼중적 형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빛은 무엇보다 첫째로 성경 증언의 프리즘을 통하여 전달된다. 교회는 성경 증언의 우선성과 권위를 인정한다. 동시에 성경의 증언이 지니는 참된 인간적인 측면도 인정한다. 성경을 본래의 증언자들이 역사적 조건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 또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성경에서 발견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직접적 말씀으로 간주될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인격적 자기-드러냄에 대한 성경의 증언과 증언에 포함된 역사적 우연성과 모호성을 필수적으로 구별해 주어야 한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성경의 본래 증언 자체는 교회의 증언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매개물인 교회의 선포와 삶으로부터 우리를 단절할 없다. 그러나 교회가 때론 계시를 흐리고 왜곡시킨다. 성경만으로도 안되고 성경에 교회 전통을 덧붙여서도 안된다. 교회의 증언과 삶의 정황 속에서 성경 증언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하나님의 영만이, 구주와 주님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불러일으키며 양육할 있다. 계시의 빛은 하나님의 영의 권능에 의해 세상의 매개체를 통하여 온다. 성령은 책임있는 해석과 비판적 전유의 과정 속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계시를 수용할 , 성경의 증언을 주의 깊은 신뢰의 마음으로 읽고 들어야 하며, 또한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해야 한다. 성경의 증언도 교회의 증언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일꾼 이상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롭고 자유로운 자기-드러냄의 행동이며, 이것은 성경의 다성적인 증언을 통하여 그리고 신앙 공동체가 성령의 권능으로 행하는 생생한 증언을 통해여 매개된다. 우리는 결코 계시를 소유할 없으며, 계시를 당연하게 여길 수도 없다. 계시는 교회가 기도해야만 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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